인사말

은혜가 임하고, 머물고, 흘러가는 교회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 '새해 첫 기적'(2005)-

조류와 육상동물, 파충류와 곤충, 그리고 광물은 모든 것이 다릅니다. 걸음 속도, 사는 방식도, 환경도 천양지차입니다. 하지만 저마다 열심히 살았기에 새롭게 주어진 시간을 함께 맞이한다는 내용입니다. 시인의 위트가 유난히 돋보이는 대상이 ‘바위’입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그런 바위에게도 “앉은 채로 도착했다”며 별도로 한 연을 내어줄 만큼 존중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결코 품을 수 없는 생각입니다.

빈부귀천(貧富貴賤), 대소관민(大小官民)에 상관없이 우린 모두 2020년을 같이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공평한 선물인 ‘시간’을 가지고 어떤 이는 새처럼, 어떤 이는 달팽이처럼, 그리고 어떤 이는 묵직한 바위처럼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순례길에 들어섰습니다. 아무도 굼벵이에게 뛰어가라거나, 말에게 기어가라 요구하지 않습니다. 곁눈질 할 필요도 없고, 뻐길 이유도 없습니다. 이보다 근사한 여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사람도 같은 이가 없다’는 사실, 참으로 감격입니다. 어릴 적엔, 나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니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뜬 이후로는 오히려 남과 다른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를 흉내 낼 필요도 없고, 남을 의식하며 살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개인도 공동체도 은혜가 임하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허다한 이유로 세워졌던 수많은 장벽들이 허물어지고, 아픔이 치유되며, 예수님과 더불어 한 몸이 된 각양의 지체들과 한 방향으로 동행할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 은혜가 내 안에서 머물고 차고 흘러 생기를 잃고 죽어가는 이 땅에 진정한 회복을 일으킵니다. 이런 비전을 품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근사한 신앙공동체, 잠실중앙교회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잠실중앙교회 최정훈 목사